불길이 삼킨 국가문화유산… 되찾을 수 있을까
최근 전국적으로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막대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3월 21일부터 4월 6일까지 34건의 국가유산이 피해를 보았다. 국가유산은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온 역사적·문화적 가치의 집합체이다. 무엇보다도 한 번 소실되면 되돌릴 수 없기에, 국가유산의 손실은 단순한 화재 피해가 아닌 우리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의 손실로 이어진다. 산불로 인한 국가유산의 피해 현황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다. 산불 진행 및 피해 현황 행정안전부 산불 중대본 보고서(250406 09시 기준)에 따르면, 이번 산불은 11개 지역, 총 48,238.61ha의 구역에서 발생했다. 3월 21일(금) 경남 신청 하동에서 산불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시작으로 경북 의성·안동·영덕·영양·청송, 울산 울주의 온양·언양, 경남 김해, 충북 옥천, 전북 무주에서 산불이 발생하였다. 3월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되고 재난 사태가 선포되었으며 산청, 울주, 의성, 하동, 안동, 청송, 영양, 영덕 순으로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었다. ▲청송에서발생한산불로전소된보광사만세루(사진: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326_0003113718) 피해 현황은 인명 피해와 시설 피해로 나눌 수 있다. 4월 6일 6시 기준으로 82명(사망 31, 중상 9, 경상 42)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시설 피해로는 7,660개소의 주택·농업 시설·국가유산 등이 전소/반소/부분소 한 것으로 잠정 추정되고 있다. 1,976세대 3,193명이 197개소의 대피소로 대피하였으며, 현재는 임시대피시설에서 임시숙박시설 189개소로 2,462명을 이동 조치한 상황이다. 지원 상황으로는 구호물품(응급구호세트, 모포, 쉘터 등) 988천여 점, 심리지원(심리적 응급처치 2,482, 심리상담 6,060) 8,542건, 정보제공 15,122건, 재해구호협회 등 국민성금 925.1억 원이 모금(4.4. 17시 기준)된 상황이다. 향후 산불 중대본 15차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며, 중앙 피해 합동조사단」구성·운영(4.8.~4.15.)될 예정이다. 국가유산 피해 현황 국가유산청은 '경북 의성군, 안동시 등의 대형 산불 및 전국에서 발생하는 동시다발 산불로 인한 국가유산 화재 피해 우려가 매우 높아' 국가유산 재난 위기 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4월 6일 기준 국가지정 12건, 시도지정 22건의 국가유산이 피해를 보았다. (국가지정 국가유산 12건 중 보물 3건, 명승 3건, 천연기념물 3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3건/시도지정 국가유산 중 유형문화유산 4건, 기념물 3건, 민속문화유산 6건, 문화유산자료 9건) 4월 4일 11시를 기준 피해를 본 구체적인 국가유산은 다음 표와 같다. ▲ 국가유산 피해 현황 (사진: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그중 전소된 것은 보물 2건과 국가민속 1건, 시도지정 9건이다. 전소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가운루, 청송 만세루, 사남고택, 용담사 금정암 화엄강당, 지산서당, 안동 국탄택·송석재사·지촌종택, 약계정, 청송 기곡대사·병보재사는 모두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온 국가유산이다. 그중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과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고운사 삼층석탑, 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운사 가운루, 2020년 보물로 지정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 사적비, 사보(寺寶)로 전해지고 있는 오동학촉대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 고운사 (사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48445&cid=42865&categoryId=42865) 앞으로의 상황, 국보 해제 가능성 이번에 전소된 국가유산은 국보에서 해제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고운사 연수전·가운루의 경우 국보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예측이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에 따르면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가치를 상실하면 지정이 해제될 수 있는데 고운사 연수전·가운루가 이에 해당한다. 세계일보의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인터뷰에 따르면 “연수전과 가운루 완전히 전소된 것이라면 보물 해제가 불가피하다. 사적(史蹟)은 터나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불이 탄 후에도 그 지역을 유지할 수 있으나 보물은 대상 건물 자체를 지정하는 거라 다 타버리면 더 이상 보물로서의 가치는 없어 보물 지정이 해제될 수밖에 없다. 두 보물에 대해 향후 복구를 하더라도 국가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는 어렵다”라고 한다. 화재로 보물이 해제된 사례로는 낙산사의 동종이 있다. 동종은 1469년 예종(재위 1468∼1469)이 아버지 세조(재위 1455∼1468)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종으로, 한국 종을 대표하는 걸작이었다. 그러나 2005년 산불로 인해 낙산사가 전소되면서 녹아내렸고,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2005년 7월 보물 지정이 해제됐다. 반면에 화재로 70% 이상이 소실되었음에도 국보에서 해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바로 2008년에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문루이다. '1층이 90%, 2층이 10% 남아 있고, 뼈대와 석축이 유지돼 있었고, 문화재위원회가 숭례문이 지닌 국보 1호라는 상징적인 의미 등 복합적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에 국보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운사 연수전·가운루가 이에 해당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물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유산의 복구 과정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해 보물과 천연기념물, 국가 지정 문화유산 등 총 32건의 문화유산이 피해를 입었고, 이 가운데 12건은 원형의 가치를 잃어 문화유산 지정 해제 절차를 밟을 위기에 놓였다. 따라서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는 피해를 입은 문화유산들을 피해의 상태와 문화재의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른 원칙이 적용하여 복구 및 해제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유산의 향후 처리 방향은 단순히 물리적 복구 여부가 아니라, 문화재로서의 원형성과 상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때, 복구 가능한 문화유산은 복원, 중건, 중창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복구 원칙을 상황에 맞게 채택한다.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을 담은 '영건일기'(營建日記) (사진 : https://www.yna.co.kr/view/PYH20190125124500013) 복원(復原)은 원래의 재료, 구조, 기법, 양식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서 해당 문화재를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거나, 상세한 문헌 자료 및 도면이 확보된 경우 주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번 화재처럼 문화재가 전소되거나, 원형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는 복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건(重建)은 기존의 문화재가 소실된 뒤 기존 설계나 유구(遺構)를 바탕으로 재건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원형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되, 현대적인 건축 재료나 안전 기준이 일부 반영된다. 따라서 전소된 문화재 중 사료와 도면이 충분히 존재할 경우, 중건 방식으로 그 정신적·상징적 가치를 계승하게 된다. 중창(重創)은 전통적으로 불교 건축에서 많이 쓰이는 개념으로, 원래 건물이 있었으며 피해를 입었거나 다른 사유로 인하여 그 자리에 새로 짓게 된 경우이다. 이는 다른 모습으로 지어질 수도 있으며 일종의 문화적 재해석을 포함한 창조적 복원이다. 따라서 문화재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보존되는 것을 넘어서, 현대적 가치를 담아 재구성되는 경우다. 복구 원칙과 이번 산불피해를 입은 문화유산들을 살펴보았을 때, 국가유산청이나 정부에서 실측이나 실제 기록들을 꾸준히 해 왔고, 실제 기록물이 기록했던 증거들이나 도면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기준으로 해서 중건, 중창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가와 민간의 대응 방향은? ▲26일 안동 하회마을에서 물을 뿌리는 소방 당국 (사진 :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89017.html) 이번 산불이 발생한 경상북도는 조선을 지탱했던 유교 사상의 본산지며, 안동, 영주, 예천에는 서원, 고택, 사찰, 전통 마을이 밀집해 우리나라의 유,무형 문화유산이 집중된 곳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주민이 거주하고 있던 생활민속공간은 국가유산청에서 집계가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기록되지 않은 유산의 위기 또한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문화유산 복구는 예산에 대한 우선 집행, 해제 기준 명확화, 종교적 유산의 경우, 전통 기술자와 종교계, 민속학자가 함께하는 복원 거버넌스를 형성해야 한다. 문화재 재난, 재해 통합정보관리시스템을 확대 적용하고,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는 체계와 함께 방제와 관련해서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소나무 식재를 주된 산림정책으로 삼았는데, 소나무의 송진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성을 높인다. 이에 따라 선조들은 임진왜란 때 불탄 고창 선운사를 재건할 때 잎이 두껍고 수분함유율이 높은 상록활엽소인 동백나무를 사용해 화재를 예방했다. 민간 차원에서는 문화재 주변 지역공동체의 문화재 이해 교육과 함께 생활유산 보존 운동도 중요하다. 이번 산불은 역사적 기억과 지역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국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해 피해를 입은 문화유산을 복구하고 기술뿐만 아니라 전통적 지혜를 활용한 방재 전략을 세우는 것, 생활유산과 비지정 유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재로부터 벗어난 그 공간들이 다시 일상을 되찾는 일이다. 우리의 문화유산과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안정적으로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지연, 변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