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8 호 [책으로 세상 읽기] 우리의 세상 (구로야나기 테츠코 - 창가의 토토)
누군가 내게 초등학교 1학년 때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을 망설일 것 같다. 그 기억이 너무나 어렴풋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창가의 토토』를 읽으며 새로운 것을 만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떠올려보게 되었다. 독특하게만 보이는 토토의 행동이 어른의 시선으로 보았기에 그런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동심을 떠올려보니 토토의 행동이 그저 이상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토토는 유독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이다. 수업 중에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당장 해결해야 직성이 풀려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일상이다. 처음엔 나도 토토가 왜 그 행동을 했는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았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수업시간에 대뜸 책상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닫으며 시끄럽게 구는 토토는 굉장히 무례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토토가 8살 꼬마 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토토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책상의 서랍이 신기했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아이는 호기심을 스스로 해결하는 중에 대뜸 혼이 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창의력을 해치지 않으며 교육할 수 있을까? 소설은 그 답이 될 지도 모르는 길을 함께 제시한다. 토토의 어머니는 선생님께 정중히 사과하지만, 절대 토토를 나무라지는 않는다. 다만 토토를 이해해주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학교를 찾는다. 새로운 학교는 조금 독특한 곳으로, 정해진 시간표가 없다. 시간에 맞춰 등교한 아이들은 저마다 시작하고 싶은 과목부터 공부하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자유롭게 질문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나 학생의 특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을 파악하기에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야외 수업도 빼놓지 않는 이 학교의 수업은 호기심 많은 토토가 제 궁금증을 모두 실험해보고, 질리도록 같은 행동을 반복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다만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토토는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만약 토토의 어머니가 아이를 무작정 혼내기만 했다면, 새로운 학교에서 토토의 행동을 억지로 규정했다면 토토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아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 당장 한국 사회에 이런 교육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는 교실은 우리 사회가 배울 점이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식의 수업과 수치화된 성적으로 평가되는 모든 활동. 아이들은 ‘혹시라도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발표를 주저한다. 이런 교육이 계속된다면 똑똑한 사람들은 넘쳐날지 몰라도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지나친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